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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죽음 이후, 블랙 유머, 2인칭 시점)

by 아리하루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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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책 표지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서평: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이상학적 저승 누아르

셰한 카루나틸라카의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2022년 부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스리랑카 현대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배경으로, 죽은 자들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독자를 삶과 죽음, 현실과 판타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형이상학적 저승 누아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이 작품은, 자신이 죽은 이유를 찾아야 하는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의 이야기를 통해 내전, 억압, 부패, 그리고 사랑과 희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심오하게 다룬다.

1. 죽음 이후의 삶: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서사

소설은 199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작된다. 사진작가이자 도박꾼, 그리고 퀴어인 말리 알메이다는 자신의 살해 후 저승의 대기실에서 깨어난다. 그는 일곱 개의 달이 뜨고 지기 전까지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자신이 죽은 이유와 주변 사람들이 처한 위험을 알게 되며 저승과 이승을 떠도는 여정을 시작한다.

죽음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암투와 폭력, 사랑했던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탐정 소설의 형태를 띠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말리의 여정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스리랑카 현대사라는 비극적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동시에, 중간계에 머무는 유령들의 대화와 갈등은 죽은 자들이 겪는 고통과 기억의 무게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2. 스리랑카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깊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스리랑카 내전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강렬하게 포착했다는 점이다.

  • 내전과 독재의 상흔: 스리랑카는 25년간의 내전과 독재 정권의 부패, 외세의 간섭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희생했다.
  •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잔혹성: 말리는 내전 중에 촬영한 사진들로 인해 살해당했다. 이 사진들은 스리랑카의 잔혹한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로 작용한다.
  • 희생된 사람들의 목소리: 말리를 비롯한 유령들은 살아 있는 동안 억압받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이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침묵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한다.

작가는 역사적 고통을 날카롭게 묘사하면서도, 이를 단순히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는 유머와 풍자, 블랙 코미디를 활용해 스리랑카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희망을 전한다.

3. 탐정 소설과 연애 소설의 결합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단순히 역사 소설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탐정 소설연애 소설의 매력을 겸비하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서사적 재미를 선사한다.

  • 탐정 소설로서의 매력: 말리는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며, 자신을 죽인 범인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의 정체를 밝혀낸다.
  • 연애 소설로서의 감동: 말리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랑은 작품의 또 다른 감동 요소다. 그는 생전에 소홀했던 사랑을 후회하며, 남겨진 이들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4.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블랙 유머

형이상학적 세계관: 작가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그려냈다. 저승의 대기실, 중간계를 떠도는 유령들, 그리고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을 먹고사는 악마까지. 이러한 설정은 현실의 고통을 초월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블랙 유머의 활용: 작품은 스리랑카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블랙 유머를 통해 비극의 무게를 완화한다. 이는 독자들이 어려운 주제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을 암시한다.

5. 2인칭 시점과 렌즈를 통한 독특한 서술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이인칭 시점을 활용한 독특한 서술 방식이다. 독자는 주인공 말리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의 고통과 혼란, 그리고 깨달음을 함께 경험한다.

특히, 사진작가라는 말리의 직업은 서사의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고장 난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진실을 찾으려는 말리의 여정은, 역사의 잔혹한 진실을 직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사진 속에 담긴 참혹한 장면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과 기억, 그리고 정의를 향한 갈망을 대변한다.

6.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비극적인 역사와 인간의 고통을 다루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말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즉 정의와 사랑, 용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말리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절망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결론: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 걸작

셰한 카루나틸라카의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나 탐정 소설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스리랑카의 비극적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사랑과 희생이라는 주제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단순히 읽는 재미를 넘어,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과 감동을 선사하는 걸작이다. 역사와 현실, 판타지와 철학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실을 일깨운다.

“모든 비극의 끝에는 희망이 있다.”

이 메시지를 간직하며,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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