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황홀한 순간』 서평 – 지옥 끝에서 마주한 구원의 서사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성, 운명처럼 얽히다
강지영 작가의 거의 황홀한 순간은 운명과 폭력, 사랑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강렬한 소설이다. 서울에서 꿈을 접고 고향 연향으로 돌아온 하임, 그리고 남편의 학대 속에서 딸을 지키려는 무영.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던 두 여성은, 역무원 지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얽히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맞이한다.
하임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며, 지완을 자신의 나디샤스트라(힌두교에서 사람의 운명이 기록된 책) 속 남자라 믿는다. 반면, 무영은 삶의 무게 속에서 사랑과 운명을 논할 여유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녀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고, 남편 희태의 학대는 끝없이 그녀를 옥죄어 온다. 이 대비되는 두 여성의 서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폭력과 구원, 그 경계에서의 선택
이 소설이 강렬한 이유는, 단순히 두 여성이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무영의 이야기는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따르며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그녀는 남편 희태에게 오랜 시간 학대를 당해왔고, 그 폭력은 그녀뿐만 아니라 딸 민아에게까지 번진다.
“딸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기에, 희태를 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68쪽)
이 문장은 무영의 선택이 단순한 복수나 탈출이 아닌, 딸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결단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길이 정말 ‘구원’일까? 그녀는 희태를 마침내 제압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설은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운명적 사랑과 현실의 괴리
하임의 이야기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그녀 역시 현실 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녀가 꿈꾸던 사랑이 지완과 연결되지만, 그 관계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흔들린다. 특히 지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자신이 믿었던 운명에 대한 혼란이기도 하다.
“사랑은 차창에 흐르는 풍경과도 같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지만, 길이 끝나지 않는 한 비슷한 풍경은 쉬지 않고 이어진다.” (275쪽)
이 문장은 하임이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지완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녀는 사랑이 ‘한 번 지나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절묘한 서술 트릭과 충격적인 반전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독특한 시도를 한다. 하임과 무영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되면서, 독자는 두 인물의 관계가 어떻게 얽히는지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서며 밝혀지는 진실과 반전은 전율을 일으키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무영이 희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내리는 최후의 선택, 그리고 그것이 하임의 이야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대한 결말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결론 – 구원의 순간은 존재하는가?
거의 황홀한 순간은 단순한 로맨스나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운명과 사랑, 폭력과 구원이라는 복잡한 감정선을 탐구하며,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강지영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녀만의 독보적인 장르적 감각을 발휘하며, 강렬한 캐릭터와 몰입도 높은 서사를 만들어냈다. 또한, 절묘한 서술 트릭을 통해 마지막까지 독자의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든다.
결국 이 소설은 묻는다.
사랑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운명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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