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들』 서평 – 일상의 틈에서 스며든 기묘한 세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제목 그대로 ‘기묘함’을 핵심으로 삼는다. 하지만 단순한 판타지나 초현실적인 설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낯설고 불가해한 요소들이 스며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법칙이 뒤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책은 총 열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들은 독립적인 듯하면서도 공통된 주제를 공유한다. 낯선 존재, 정체성의 혼란,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어온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질문이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일상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들
책의 첫 번째 이야기 「승객」에서부터 우리는 이 기묘한 세계로 초대된다. 어린 시절 극심한 공포를 겪었던 주인공이 성인이 된 후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마치 부모의 말 한마디가 주문처럼 작용한 듯하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보고 있기에 존재한다."라는 대사는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가 믿는 현실이 실은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녹색 아이들」에서는 1656년 스코틀랜드 사절단이 인간도, 동물도 아닌 정체불명의 녹색 피부 아이들을 발견한다. 인간 문명의 경계 밖에서 살아온 존재들, 언어도 다르고 행동 방식도 다른 이 아이들은 우리에게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병조림」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다. 평생 어머니에게 의존하던 남자가 그녀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 남긴 수십 년 된 병조림을 하나씩 열어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병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예상과 다르다. 그는 과연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인가?
「솔기」에서는 노인이 아내의 죽음 이후, 세상의 작은 균열에 점점 집착하게 된다. 양말의 솔기, 볼펜의 색깔 변화, 우표의 모양이 익숙한 것과 다르게 변하면서 그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세상의 질서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변한 것인지 독자는 헷갈리게 된다.
「심장」은 장기 이식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다. 새로운 심장을 받은 후, 그는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육체로 정의되는가, 아니면 정신으로 정의되는가?
「트란스푸기움」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다.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생명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의료 기술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존재로 전환하려 한다. 이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이야기 「인간의 축일력」에서는 한 존재가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는 인간이 가진 불멸의 욕망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삶이 지속되는 방식에 대한 사색을 이끌어낸다.
익숙하지만 낯선, 불가사의한 세계로의 초대
토카르추크는 기묘함을 단순한 장르적 요소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장치다. 단순한 SF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존재론적인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성인의 산」에서는 한 심리학자가 연구소에서 실험을 수행하며, 동시에 수도원의 수녀들을 만나 과거 순교자들의 삶을 연구한다. 과거와 현재, 신비주의와 과학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론 –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 ‘정상’적인가?
『기묘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서로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인간과 자연, 존재와 인식,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문학을 읽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토카르추크가 창조한 이 ‘기묘한’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아마도 문득 주위를 둘러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정말 ‘정상’적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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