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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폴리스맨(사랑, 억압된 자신, 상처)

by 아리하루 202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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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 로버츠 "마이 폴리스맨" 책 표지

사랑, 금기, 그리고 치유의 시간들

1950년대 영국 브라이턴의 해변 도시, 동성애가 범죄로 여겨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이 폴리스맨』은 금지된 사랑이 남긴 상처와, 그 상처를 넘어선 화해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베서니 로버츠의 이 소설은 한 남성과 두 명의 연인이 얽힌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그들의 사랑과 고통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사랑이 금기였던 시대의 부조리 속에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준 이들이 40년 후 서로를 바라보며 화해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금기된 사랑, 억압된 자신

“한 여성과 한 남성이 같은 남자를 사랑했다.”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 억압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톰, 패트릭, 매리언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 속에서 억눌린 사랑과 욕망이 개인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찰관 톰은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대의 낙인과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며 자신을 사랑해 온 교사 매리언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사랑은 학예사 패트릭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톰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려 했지만, 결국 그는 매리언과 패트릭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매리언은 남편 톰이 실은 패트릭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톰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톰과의 사랑을 믿으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리고 질투와 분노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며 패트릭에게 상처를 주고 맙니다.

한편 패트릭은 톰과의 사랑을 숨기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조차 톰을 “나의 순경님(my policeman)”이라 부르며, 사랑의 순간들마저 은폐해야 했습니다. 톰과 함께한 베네치아 여행과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일기조차 누군가에게 발견될까 두려워했던 패트릭의 모습은 동성애자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불안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서로의 상처를 껴안으며 시작된 화해

이 이야기는 단순히 금지된 사랑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40년이 지난 1999년, 매리언은 뇌졸중을 겪고 몸이 불편해진 패트릭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지난날 자신이 패트릭에게 남긴 상처에 대한 사과이자 화해의 손길입니다.

매리언은 패트릭을 돌보며 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죄책감을 마주합니다. 그녀는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패트릭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매리언 자신이 지난날 패트릭과 톰, 그리고 자신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고백과 용서의 요청입니다.

패트릭 역시 매리언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그녀와 공유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남자를 사랑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랑에서 상처받았음을 인정하고, 함께한 시간을 통해 조용히 연민과 이해의 감정을 키워갑니다.

“말없이 서로를 눈에 담으며, 조그만 고갯짓으로.” 소설 속 이 문장은 두 인물이 마침내 이룬 화해의 순간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수십 년 동안 얽히고설킨 상처와 미움이, 결국 이해와 공감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불가능했던 사랑,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사랑

『마이 폴리스맨』은 단순히 한 시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억압적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을 짓밟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도 사랑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톰, 패트릭, 매리언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비극이었습니다. 특히 동성애가 금지된 시대적 배경은 이들의 상처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고통은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깁니다. 시간이 지나 서로를 이해하고, 고통을 공유하며, 화해하는 과정은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줍니다.

결론: 시대를 넘어선 사랑과 화해의 이야기

『마이 폴리스맨』은 금기된 사랑의 비극과 그로 인한 상처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사랑, 고통, 그리고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99년, 매리언과 패트릭의 만남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아니라, 40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불가능했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남긴 상처들은 그들 각자에게 고통이 되었지만, 동시에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클래식한 감성과 세밀한 감정 묘사를 통해 독자를 사로잡는 이 작품은,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화해와 이해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마이 폴리스맨』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소설로,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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