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뒤흔든 아이의 등장, 그 후의 이야기
“삶의 한가운데 그들은 혼자였고 동시에 함께였다.”
2021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클라라 뒤퐁-모노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는 깊은 울림과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번 국내 출간은 프랑스 문단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이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첫걸음이라 더욱 반갑다.
소설은 ‘부적응한 아이의 등장’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의 탄생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그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있다. 흔히 우리가 감정적으로 풀어내기 쉬운 이야기를 클라라 뒤퐁-모노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한 아이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복잡한 감정의 결을 치밀하게 직조해 내는 방식이 탁월하다.
가족의 시선으로 그려낸 삶의 무게와 치유의 과정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부적응한 아이’ 자체가 아닌, 그 아이를 중심으로 맏이, 누이, 막내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소설은 이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을 서술자로 삼아 각자의 내면을 조명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맏이는 책임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방황하고, 누이는 애정과 분노가 교차하는 감정 속에서 고립을 경험한다. 막내는 형제애와 부모의 관심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새긴다.
특히 “삶을 뒤흔든 존재”라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이 아이는 단순히 ‘부적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심오한 영향력을 가족 모두에게 끼친다. 독자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가족사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작가가 인물들의 이름 대신 ‘맏이’, ‘누이’, ‘막내’라는 지칭을 사용한 것도 누구나 이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도록 의도한 장치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세벤느 지역은 이야기의 흐름에 깊이를 더한다. 자연은 때로는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반영하며, 때로는 회복의 도구로 작용한다. 작가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삶의 순리와 인간의 적응 과정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기본적인 자연법칙은 결코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긴 깊이 있는 메시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 덕분에 독자에게 경이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이 이 작품을 극찬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엘르’, ‘렉스프레스’, ‘르몽드’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점은 작가가 그려내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감정선의 깊이였다. 비극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작가의 시선은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또한, 클라라 뒤퐁-모노는 단순히 감정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스며들어 있어 독자는 더 큰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가족, 상실, 회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창적인 시선과 섬세한 서술 방식은 이 작품을 단순히 한 권의 소설에 그치지 않고, 오랜 여운을 남기는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결론: 삶은 흘러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적응하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한다. 삶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라지지 않는다』는 완벽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그 변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적응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삶이 때로는 무겁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가족이라는 연결고리 속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과정은 우리의 존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소설 속의 맏이, 누이, 막내처럼, 우리 역시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적응하며, 결국 살아간다.
클라라 뒤퐁-모노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다. 삶과 가족, 그리고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문학적 완성도와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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