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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고보)

by 아리하루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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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책 표지

 

『타인의 얼굴』 서평 – 가면 속에서 찾는 정체성의 역설

얼굴을 잃은 남자, 존재를 잃은 인간

아베 코보의 『타인의 얼굴』은 한 남자가 사고로 인해 얼굴을 잃고, 인간관계와 정체성까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소설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 가면을 제작하지만, 가면을 쓰고 타인으로 변신한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소설은 단순한 신체적 결핍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얼굴’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탐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고, 거울이나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얼굴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아베 코보는 이를 통해 인간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가면과 정체성 – 진짜 나는 누구인가?

소설에서 주인공은 정교한 가면을 만들고, 그것을 쓰고 아내를 유혹하는 실험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타인의 얼굴’ 속에 갇혀 진짜 자신과 가면 속 자신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좋든 싫든 간에 이것이 내가 선택한 가면이다. (…) 하지만 잘 만들어졌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대사는 그의 불안과 혼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가면을 만들었지만, 가면을 쓴 순간 그는 더 이상 원래의 자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얼굴이 있을 때의 나인가, 아니면 가면을 쓴 후의 나인가?

주인공이 아내를 유혹하는 실험을 한 것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그는 가면을 쓴 자신을 ‘타인’으로 여기며 아내가 타인에게 끌리는지 시험하지만, 결국 질투와 혼란 속에서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아베 코보는 타인과 나의 경계가 어떻게 모호해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

이 소설의 핵심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얼굴을 잃자마자 타인과의 관계도 단절된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사라진 순간부터 그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취급하며, 그는 더 이상 사회 속에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가면을 쓴 후에도 그는 온전히 자신을 되찾지 못한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타인의 반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SNS와 가상 세계가 확장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나와 현실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우리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자아는 얼마나 일치하는가? 『타인의 얼굴』은 이러한 현대적인 고민을 예견한 작품처럼 읽히기도 한다.

인간 소외와 현대 사회의 문제

아베 코보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문제도 조명한다. 주인공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얼굴을 잃는 순간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된다. 그는 가면을 만들어 다시 인간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오히려 가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더욱 고립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소외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지위, 외모, 관계 등은 우리가 ‘자신’이라고 믿는 것들과 얽혀 있지만, 만약 그것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동일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을까?

결론 – 우리는 가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의 얼굴』은 단순한 신체적 상실이 아니라, 정체성, 인간관계,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는 정말로 가면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사회적 역할, 직장,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무엇인가? 아베 코보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한 얼굴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가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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